1.
학원도 회사도 던져놓으니 마음이 참으로 편했다. 휴대전화의 전원을 끄고 장교에게 넘겨버리는 순간. 이제 다른 어느것도 나의 의지를 강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날아갈것만 같았다. 물론 조교/교관은 빼고 말야.
2.
분명 잠들기 전에 비가 주룩주룩 오고 있는 것을 확인했는데 새벽에 깨어 밖을보니 말라가고 있는 땅을 볼때의 참담함이란. 강의건물에서 얌전히 숙면을 취해줄 생각이었지만 숙면은 커녕 땀만 한 바가지 흘리고 돌아왔다.
3.
안양. 왜 이렇게 먼 곳까지 와야하는지 몰랐지만, 가보니 알겠더라. 특별히 5개 구의 해군을 모아 통합 훈련을 실시하는 날이었다.단지 2주 차이로 5년차가 아니라 4년차가 되어 이번 년도 6-24-6 훈련이다. 5년차에는 6-8-6이라 하던데 사실인지 모르겠군.
4.
안양2. 안양LG라는 축구팀도 있었고, 굉장히 자주듣던 이름이라 안양을 굉장히 대도시라 생각했건만, 안양역에 내린순간 예상은 산산히 부서졌다. 어쩌면 내가 내린곳은 변두리일지도 모른다. 안양을 지나는 다른 2개의 지하철역이 더 있던데 그쪽이 번화가 일지도 모르지.
5.
안양 박달교장의 식당음식은 완전 'hell'이라는 검색정보를 너무 많이 입수한 탓에 도저히 식당까지 갈 용기가 나지않았다. 밀가루 같은 물에 밥을 넣어 설렁탕이라하고, 고추가루 약간 푼물에 밥을 넣어 육개장이라 한다는 말을 몸으로 체험하기는 싫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PX의 주전부리들로 점심을 대신했다.
6.
아무 생각없이 걷고 뛰고 땀을 흘리고,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앉아서 꾸벅꾸벅 조니 마음만은 무척이나 편안했다. 다시 손에 넣은 휴대전화를 켜자 '콜키퍼' 문자가 여러통 날라왔지만, 확인해보니 오늘 결근인줄 알고 왔던 전화. 다시 마음이 편해진다.
7.
집으로 돌아와 행여나 하는 마음에 메일을 확인해본다. 일본에서 온 업무메일이 분명한것 같은 제목의 녀석이 있다. 훗, 당할쏘냐. 만약의 확인사살을 위해 오늘의 업무메일은 하나도 읽지않았다. 수신확인도 나를 제어할 수는 없지.
8.
자, 이제 11시. 드라마 감상과 웹서핑 그리고 블로깅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 내일의 훈련도 기다리고 있으니 다시 한번 마음이 편하구나!!! 그런데 글을 쓰다가 저 일본업무메일을 확인해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어버렸다. 아, 호롱불을 향해가는 나방의 심정이.
구글에서 본 어느 블로거의 문구대로 '불편한 거장' 의 죽음이다. 그 블로거의 말대로 나에게도 그는 불편한 작가였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의 책을 볼때마다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 느낌은 다시 그의 책을 잡지 않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고.
인트라넷의 동호회에서 알게된 이후 제대로 접하지 못하고 있다가, 전역 후 "타이탄의 미녀"를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그후 "갈라파고스"는 대여 후 읽다가 집어쳤고, "고양이 요람'은 본가에 아직도 펼쳐보지도 않은체로 모셔져 있다.
국내에 번역된 자료는 5권 정도인 모양인데 첫 작품을 제외하면, 어느 하나도 쉽게 손이 가지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읽은 타이탄의 미녀는 절판된 모양이고. 그의 죽음으로 이제 더이상 신작이 나오지 않을테니 내 남은 시간 전부 동안 '불편함'을 극복하고 천천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이름도 유명한 FTTH - Fiber To The Home 이다. 일단 설정에 뜨는 속도는 100mbps지만 실상은 그보다 조금 낮은 듯하다.
전봇대가 내 방근처에 있어 창문 틈을 드릴로 뚫어 광케이블optical fiber을 모뎀에 연결, 그리고 공유기를 통해 랜카드에 연결하고, 길고 긴 선 연결이 귀찮아 동생 쪽은 무선랜을 사용하여 연결하였다.
그리고 시험삼아 대용량 파일 내려받기를 하니, 약 CD1장을 몇 십초 만에 받아버린다. 미국 드라마 시리즈물 22편을 1시간 정도만에 다 받은 것 같다. 실 시간은 더 적게 추산될 것이다. 중간 중간 하드 드라이브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일시정지 현상이 일어난것을 제외한다면 꿈의 속도라는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근접한 것이다.
물론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이것도 적응되다 보니 그다지 빠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덕분에 드라마나 영화 등을 줄창 보고 있지만 말이지.
그냥 떠오르는대로 마구 두드렸더니 글의 전개가 엉망이다. 여튼 마무리를 위해 내린, 하나 마나한 오늘의 결론은,
부서장-이사의 퇴사로 인한 단촐한 회식이 있었다. 회식이라고 해봤자, 참가자는 달랑 3명. 저녁을 먹은 후 이사가 준비해온 술을 들고 기숙사로 향했다. 짐꾼인 내가 손에 품은 것들은, 발렌타인 30년 산과 이과두주 두 병 그리고 정체불명의 53도짜리 중국술이었다.
간단한 두과류 안주와 우유, 물 그리고 '하바네로' 의 모방품 '절대신' 두 봉지와 함께 시작한 조촐한 회식. 처음에는 서로 공감대를 찾지못해 어색한 대화만 흐르고 같이 9시 뉴스나 보고있었다. 시사나 정치에 관한 이야기로 어색함을 풀고, 곧이어 합류한 다른사람으로 인해 격발된 축구이야기.
술이 오고가면서 어느사이에 모두 말이 많아지고 '연회장'은 화목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마지막으로 기숙사 멤버 두 사람이 합류하면서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하고, 회식장소를 주거지로 하고있지 않은 사람들이 떠나간 후의 세 사람은 새벽까지 TV를 보며 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마시다 죽은 듯이 잠이 들었는데 다량의 안주로 인한 거북한 속을 제외하고는 숙취가 거의 없었다. 역시 좋은 술은 다르구나 하는 느낌이 다시 한번 왔다. 내 언제 몇십 만원하는 술 다시 실컷 마셔보나 싶어 기록을 남긴다. 뭐, 연봉이 한 세 배쯤 오르면 자주 마셔줄텐데 말이다.
DAUM 카페에 갔다가 한동안 'new'의 빨간 불이 들어온적이 없는 '정컴99카페' 에 들르게 되었다. 1년전 이때만 하더라도 어느정도는 사람이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황폐해져 그저 기록의 보관소로서 그 존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냥 죽 둘러보다 자신이 쓴 글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읽는동안 그 문장이 담고 있는 치졸함과 어리광에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였다. 언젠가는 저곳도 없어질수도 있고, 또한 나의 자괴감을 후일 그릇된 방향을 바로잡는 척도로 삼기 위해 그곳에 내가 두드렸던 헛소리들을 일부 옮겨온다. - 너무 엄청난 헛소리들은 그냥 그곳에서 사장시키기로 했다. 뻔뻔함에도 정도가 있기 때문에.
*2월 5일 13시37분
2월. 한국교육제도의 특성상 대부분 - 아니 거의 모든 - 의 학업일정은
3월에 시작하게 되고 그에 맞게 십수년을 길들여져 오다보니,
이 2003년 2월도 아직은 2002년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느낌.
또한 이 백수짓도 벌써 두 주째.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지 못한
시간들은 꿈결같이 흘러가 버렸다. 자신감 결여에서 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어느덧 슬금슬금 커져가고 있는지도.
하지만 비틀즈도 지껄이지 않았던가. 오블라디 오블라다.
쳇. 인생이 다 그렇다면 살아가는 목적은 뭐람.
누군가의 말대로 살기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일지도. 아, 헛소리 길게 하는 군.
- 전역 후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던 시기의 참담함이 드러나있다.
*2월 9일 22시38분
지금 시간은 윈 2000 으로 10시 35분 핸드폰 위성수신으로 10시 32분.
그러나 이제는 잠들어야 할 시간. - 아직 저녁인데.
궁극 PC폐인의 길을 걸을 때에는 그날 아침의 시작과 함께 잠들어
끝나갈 무렵에 일어나고는 했으나, 과도한 금전에 대한 욕구를
이기지 못해 직업전선에 뛰어 듬으로서 10시 30분에 잠들어야 하는
어이없는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아마도 2월 동안은 이러한 패턴이
계속될터. 안녕 나의 폐인 동지들. 다시 만날 그날까지.
이름은 적지 않겠지만, 윤모군. 이모군. 이모군. 안모군.
그럼, 이만 나는 에테르의 세계로.
- 공사장에서 막노동에 투신해 있을 무렵. 줄어든 PC사용시간에 대한 한탄.
*2월12일 22시58분
글을 두드려야 겠다고 마음 먹게 된것은 작은 동산에서부터 펼쳐진 시골마을의 풍경에 압도당한 후였다. 우연찮게 노동의 한 갈래로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지만, 그 전원적 풍경의 예라고 할 수 있을만큼의 한가로움이란.
늘씬한 소나무 숲을 따라 길을 걷는 그 아름다운 광경에서도 나는 몇 분전 들었던 '일당 4만원'에 날수를 셈하며 멍청히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각의 효과를 압도하는 망상의 깊이에는 누구도 당할 자 없으리 - 금전의 위력이란! - 이렇게
오늘도 조금씩 순수를 잃고 나는 하루 나이를 먹어 가는 게다.
오늘은 2003년의 43번째 날. 그만큼 나도 당신들도 걸어 오고 말았다.
"나와 함께 나이를 먹자!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았나니."
- 브라우닝 -
- 금전에 맛을 들이던 시절. 옛날의 글쓰기 버릇이 조금 드러나있다.
*2월15일 21시48분
장시간의 노동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800원이나 하는 교통비와 집까지 가는 거리를 생각하며
잠깐 망설였지만, 그 거리를 가득 메운 퇴근시간대의 차량들을
보고는 마음을 굳혀 걸어가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그 상쾌한 마음도 잠시. 못에 찔린 발이 쑤셔오면서,
그리고 갑자기 소통이 원활해진 도로 상황을 보고 상당한 갈등이
시작되었다.
취침시간까지의 한정된 다섯 시간 속에서 -20여분을 800원과
교환하는 것이 과연 쓸만한 일인가. 하지만 얼마 걷지 못해서
고교시절 같이 주사위를 굴리던 동료와 마주치고 말았다.
서로 입대후 연락이 이어지지 못했었기에 그 반가움은 이루 글로
옮길 수가 없음이다. - 음지에 서식했던 인간들의 동종의식이랄까.
아무튼 그 만남으로서 내 마음 속의 저울은 이내 기울어지고 말았다.
아아, 그리고 나는 오늘 또한 한가지의 신념을 실현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왼쪽을 쳐다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앞으로는 더욱 더 정면을 - 심지어는 오른쪽을
쳐다 볼테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탑승구를 정확히 정류장에 맞추어 주면
더욱 좋으련만. 나는 내 영화의 주인공이니 말이다.
- 옛날의 글쓰기 버릇이 잠깐 극명하게 드러났던 시간.
경험한 만큼 쓸 수 있다는 말은 정말 사실이다.
* 3월 6일 23시19분
다람쥐 바퀴 돌리듯, 똑같은 일상을 계속 반복하고 있으니
날짜관념이 희박해지며 하루를 3시간 단위로 나누어 생각하는
버릇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한 11시 30분에
잠들며, 시간을 넘기면 '수폐인 모드' 로 자동전환된다.
그리고 다음 날 6시에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거리를 헤맨다. 더군다나 오늘같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우울청년 모드'로 돌입하여 하루종일 망상이 끓이지를 않는다.
아, 과연 지금 내가 보내고 있는 시간들이 앞으로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모든 미래가 장미빛이지만은 않을터.
전과의 모범답안처럼 최선을 다해 달릴수 밖에. 모두에게 좋은 밤.
* 수폐인 모드
: PC폐인 8레벨에서의 업그레이드 패치로 '갑부201.exe' 과
'자취방103.exe'을 설치하면 레벨이 오버클럭 되며
보너스 파일로 '월하야상곡.mp3', '점심무렵기상.bmp'
파일이 생성됨.
* 우울청년 모드
: Daydreamer 모드의 확장팩인 Etherwalker 모드의 번외편.
'제살깍기.exe' 와 '상처소금치기.dat'로 이루어져 있음.
- 지인들과의 농담을 글로 옮겨봤던 것.
*3월29일 22시58분
어느덧 3월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더군다나 요즘은 너무나도 좋은 날들이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내일 새벽, 일을 가기 위해 현관문을 열면 성급한 4월이
신문지를 두른 체 문 앞에 누워있지 않을까 하는 몽상이 들 정도로.
정말 그렇다면 나는 그날도 상쾌한 봄을 사뿐히 밟고
먼지와 가루의 향연으로 처절하게 굴러들어 갈게다.
이제 2003년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어제도 나는 2002를 휘갈기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이렇게 하루하루 봄날은 가고,
나도 갈길 바쁜 3월에게 작별의 인사를 미리 던졌다.
내일은 '벌써' 3월 30일인 게다.
- 잠깐 나타났던 글쓰기 성향. 느끼했다.
*4월 1일 00시 6분
잠자리에 잠시 누워 망중한을 즐기다가, 켜놓은 컴퓨터 탓에
의자에 앉았다. 웹 서핑에 몰두한 나머지, 상황을 알지는 못하지만
문득 뒤를 돌아보니 형광등이 달려있던 장식물이 통째로 배게위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만약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면 아마도
비명횡사나 요절까지는 아니더라도 생명에 위협을 받았으리라.
하긴, 아직 24살이다. 철없던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꼭 29살에
얼어죽으리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해보고 싶은 것이 많으니
조금 더 살아야 겠다는 가치관을 주입하고 있다.
음, 그러고 보니 최근 구입한 일본의 요절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의
시선집을 며칠만에 도난당하고 말았다. 일터에서 틈틈이 애독하였는데
어느날 가방안에 들어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무척 좌절했었지.
어린 약혼녀의 죽음을 감당하지 못해 떠나간 노발리스도 구하고
싶지만 절판인터라. 아, 이런.
행동의 변화에 따라 목숨을 구한 것에 놀라워하며 글을 쓰려 하였는데
이 무슨 주절거림이람. 그만둬야겠다. 모두에게 좋은 밤.
- 언제나 애용하는 주제다. 쓸데없이 일상을 나열하기.
*4월19일 01시24분
어느덧 시간은 궤도를 따라 충실히 흘러 벌써 이천삼년도
백구일째에 접어 들었고, 또한 (혹은 벌써) 사월도 반 이나
지나가버렸다. 글쎄, 곧 시험이 닥친다는 이야기를 먼 발치에서
계속 듣다보니 '반이나'라고 쓸수 밖에 없다. 혹시 여유와 이해로
가득차 있어 "사월도 반 밖에 가지 않았군" 이라고 중얼거릴수 있는
시간관념의 행복자가 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나는 학생이 아닌 관계로 시험을 치루지는 않지만,
그 기운에 도취되고 나면 정말 뭐라도 하나 공부해야 할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틀 후부터 시험에 돌입할 예비역 동기들
그리고 극소수라 알고 있는 여성 동지들.
모두의 시험에 운'도' 함께 하길.
- 학생이 아닌 시절의 일이라 관조적 자세가 드러나있다. 그러나 반년후에는..
*5월 1일 16시24분
폭풍처럼 작업이 휘몰아치고 나면, 머릿속에 맴도는 숫자를 몰아내기
위해서라도 쓰디쓴 커피 한 잔이 필요하다. 괜히 눈에 띄는 장소에서
여유를 즐기다가는 근무태만의 공익근무요원으로 오해받기 쉬우며,
군필의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한적한 장소를 찾는다.
멀리서 바이올린 연주가 들려오면 알지도 못하는 선율에 귀를 기울이고
마치 음악감상의 대가라도 되는 양 멍해지곤 한다.
- 마산시립교향악단은 오늘부터 다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하지만 저 빽빽거리는 관악기들만은 자제를 해주었으면 -
그리고 오늘부터 5월이 시작되어버린 것이다. 세월의 흐름을 서술하는
일은 커피를 마시는 내용만큼이나 진부한 주제가 되어버린 만큼 저 위의
제목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나의 작업환경이 바뀌었다.
세 명이 공유하던 넓은 공간을 독차지하게 된 것이다.
물론 나 이외에도 침대 여섯 개, 책상 세 개, 의자 다섯 개,
전화기 두 대, 스테플러 하나가 같이 있긴 하지만.
거기다가 개인 노트북에 인터넷까지 연결되어 있으니 이곳이야말로
칠층천의 성전이 아니련가. 뭐, 요약하자면 편히 놀고먹으며
돈벌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5월이다. 5월. 따사로운 햇빛이 무척이나 눈부신.
- 직장을 옮긴 직후의 여유가 드러난다. 정말 저때는 여유밖에 없었지.
*6월30일 06시41분
아침이 밝았다. 열려 있는 창문의 방충망 사이로 모닝커피의
향이 밀려 들어온다. 그리고 창 밖엔 새벽부터 나를 괴롭히던
날개달린 수컷 개미들의 시체가 쌓여있다.
이놈들. 교미비행을 하려면 여왕개미에게로 날아야지
멀쩡한 방충망에 들이받으면 어쩌겠단 말이냐. 그렇다고 해도
목적을 이룬 것은 몇 놈 일까. 태어난 목적이 이것이고 생명을
다한 이 비행을 위해 살아가다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나는 아직 비행의 목적지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듯 하다.
이렇게 전자파로 몸을 괴롭히고, 방탕의 칼을 휘둘러 시간의
목을 차례로 베어버렸다. 아, 목적없는 밤샘의 허무함이란,
저, 허리 터진 개미보다 부질없는 것 일지도.
- 망가져가는 글이 확 눈에 들어온다. 두 달 넘게 글을 두드리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고,
여름이 시작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