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外라고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간적 밖에 없을 만큼 충실하게 육지인으로 살았지만,
엉겁결에 일본으로 출장을 가게 되어 감회가 남달랐다. 전부터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국가이기도 했었고.
같은 불.유교 문화권인데 뭐가 그리 다를까 했다만, 겉모습은 일단 확실히 다르더라.
첫 날.
나리타에 내리자마자 펼쳐지는 풍경은 이곳이 확실하게 한국이 아니란 느낌이 들었다. 마중 나온 사람과 쾌속열차를 타고 사무소가 있는 '심바시'로 갔다. 사무소는 역에서 한 10분 정도 거리인데 그 잠깐 걷는 동안에도 미칠 듯하게 땀이 배어나왔다. 엄청난 습기. 점심으로는 '삼각김밥' 을 먹었다. 아니 일본식 주먹밥이라 해야하나.
그리고 다시 심바시에서 '유리카모메'를 타고 오다이바의 '도쿄 빅 사이트'까지 갔다. 목적은 전시회를 대비한 오류처리 대기반 임무. 물론, 전시회 임무를 한 이틀동안은 오류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유리카모메는 무인조종 열차였다. 컴퓨터에 의해 자기가 알아서 정차했다가 출발하고 문닫고 잘도 움직이더군.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레인보우 브릿지'를 건너 도착한 도쿄 빅 사이트. 동인지와 관련된 만화를 보면 등장하곤 하던 곳인데 전혀 실용적이지 않게 지어놓은 건물이다.
전시회장으로서의 상징성은 훌륭하다고 생각되지만. 전시회는 도쿄 국제 도서전 및 디지털 관련이었는데 구글, 어도비, 샤프 등 큰 회사들이 나름 있어서 나레이터들을 쓰고 있었지만, 국내의 수준에 비하면 주목을 끄는 요소는 없었다. 저녁까지 전시회장을 지키다가, 다시 유리카모메를 타고 사무소로 귀환.
일본업체에서 요구한 수정사항을 하나 처리해주고는 숙소인 '긴시쵸'로 돌아왔다. 근처의 식당에서 간장라면과 맥주를 먹었는데 과연 맥주의 맛이 매우 좋았다. 대체 한국에서 내가 십수년간 먹어온 맥주는 보리가 아니라 뭘로 만든건지 의심이 들었다.
둘 째날.
오전에 일본업체와 회의를 하고, 점심을 '회전초밥'으로 먹었다. 가격은 접시당 150엔. 이것도 얼마 전 국내에서 먹었던 것과 비교했을때 차원이 달랐다. 역시 음식은 그 유래지에서 먹는 것이 최고이려나. 몇몇 예외도 있긴 하겠지만. 오후부터 저녁까지 또 전시회장에서 시달렸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사람들 속에 어색하게 서있기도 뭐해서 전시회장을 계속 돌아다니며 책 구경을 하는 척 했다. 수많은 군중 속의 색다른 고독. 저녁은 일본업체 사람과 맥주를 마셨다. 세 명은 신나게 일본어로 대화를 하는데, 나는 가끔 알아듣는 단어가 있으면 앞뒤를 추론해보고 혹 통역을 해주면 그제야 완전한 이야기를 끼어 맞출 수 있었다. 다시 열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맥주와 참치회를 먹고는 잠이 들었다.
셋 째날.
토요일. 늦잠을 자고, 정오전에 일어났다. 전철을 타고 사무실로 가서 두고온 노트북을 가져왔다. 혼자 갔기 때문에 잠시 길을 헤매서 여기저기 방황하다 겨우 찾아갔지만, 열쇠가 없어 이리저리 연락을 한 끝에야 입실. 오락실을 한 번 들어가봤는데 대부분이 마작게임을 하고 있었다. 할게 없어서, 버츄어 스트라이커를 한 판하고 퇴실. 점심은 '오챠즈케'를 먹어보았다. 육수같은데에 밥을 말아 마시듯이 먹는건데 맛은 있었지만, 양이 매우매우 부족한 단점이.
현지 사무소분의 안내를 받아, 오다이바로 다시 놀러가기로 했다. 쇼핑몰에 관광지 같은 것을 섞어놓은 곳인데 아마 '아오미'였던 것 같군. 남자 둘이서 쇼핑센터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처절함이란. 그래도 눈요기는 잔뜩했으니.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해변가에서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일본 출장 동안의 유일한 사진 한장. 사무소 분이 폰카로 찍은 후에 메일로 전송해 주었다. 유일하게 남은 기록된 추억인 셈이군. 이곳에서 맥주를 마시는 동안 약간 취기가 올라서 묘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해변에서 이래저래 고립되어 있었던 셈이다. 일본이란 섬나라 그리고 그 안의 섬 오다이바. 이방인인 나를 둘러싼 수많은 외국인들. 마지막으로 언제나 내 마음 한 구석을 짓누르는 알 수 없는 고독감. 섬안의 섬, 고독 안의 고독.
넷 째날.
아침부터 일어나 열차를 1시간 반 동안이나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가는 내내 잠들지 못하고, 풍경이나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 여기서 또 한번의 이국적인 느낌의 주택가들을 흥미롭게 관찰. 면세점에서 회사 사람들에서 줄 기념품으로 담배와 초콜릿을 샀다. 본래 계획은 출장비를 아껴 사려했지만, 출장 기간동안 교통비가 너무많이 들어 결국 신용카드를 써야했다. 2시간의 대기, 2시간 반의 비행을 거쳐 인천공항. 다시 1시간 반의 버스로 귀가. 이번에는 일로 간 것이고, 숙소를 현지 사무소분과 같이 썼기에 행동의 자유도 많지 않았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여행을 목적으로 가서 차분히 관찰하다 돌아오고 싶다.